[뉴스에듀=김선태 국민기자] 1987년, 나는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장파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임진강의 둑을 따라 형성된 마을은 미군이 주둔할 때에 소위 말해 군사지역이자 미군부대 인근에 모여든 주민이 도끼로 나무를 깎아 지은 판자촌이 이 마을의 시작이었다고 하였다. 내가 발령을 받아갈 때에는 이미 미군은 철수를 하여 버리고 거의 폐촌이나 마찬가지라는 현지 주민들이 이야기 이었다.

처음 온 교사들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다들 싫어하는 고학년을 맡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새로 전입한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6학년 그 다음에 나는 5학년, 그리고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처음 대면한 반에 들어서서 나는 나를 소개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각자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였다. 이것은 아이들을 빨리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이자 빠른 방법이기도 하였다. 이름과 사는 마을이름 그리고 자기가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면서 번호 순서대로 이름을 불러 주었다. 호명을 받은 어린이가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발표를 하면 모두 잘 듣고 나서 박수로 칭찬을 해주게 하였다.

주볏주볏 하면서도 나름대로 이야기들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김0란” 하고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이 한 아이에게로 쏠렸다. 나는 다시 한 번
  “김0란!”
하고 불렀지만, 그 아이는 역시 멀뚱멀뚱 바라만보고 대답이 없었다.
  “김0란! 혹시 말을 못하니?”
  “아니에요. 집에서는 말을 잘하는데 학교에 와서는 말을 안 해요!”
아이들이 한꺼번에 와그르르 소리를 질러댄다.
  “그래?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있었니?”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서 소개를 마치고 다음시간부터 조용히 수업을 진행 시켰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학급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외운 아이가 바로 그 말을 안 하는 아이이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아이는 대답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단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살펴보아도 전혀 진척이 없다. 공부시간에 문제를 풀거나 하는 것을 보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수학 문제도 제법 풀어내곤 하는데 말을 하지 않으니 발표는 전혀 없고, 국어 시간에 책을 읽힐 수도 없어서 어느 정도로 글자를 익혔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되었다. 받아쓰기를 하여보니 문자해득은 되었지만,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오후에 남겨서 말을 물어 보아도 전혀 대답을 하지 않으니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가정방문을 하였다. 학교에서 50M정도 밖에 안 되는 곳에 집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기로 한 것이었는데, 어머니는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을 만큼 긴 이야기를 하였다.

 “학교 입학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이 마을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 노래도 잘하여서 집안에서 재롱을 부리곤 하였어요. 그렇게 입학을 한지 두 달쯤이나 되었을까? 아이가 울고 들어 왔어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말을 ㅇ나해요. 그래서 이웃집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우리 ‘란’이가 무슨 발표를 하였는데, 틀린 답을 얘기 했던가 봐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모두 웃으면서 ‘그것도 몰라.‘하고 놀렸대요. 그러고 나서는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해요. 아이들이 웃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틀릴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제 5학년이 되어버렸으니 학교에서는 담임을 맡으신 분마다 아이가 벙어리인줄 알아요. 속이 상해 죽겠어요.”
대충 이런 이야기이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말을 시켜 보리라 마음을 먹고 수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을 시켜 보았지만 영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일부러 혼자 남겨서 이야기도 시켜보고, 장난을 걸어보기도 하고, 간지럼을 태워도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려 했지만, 이미 5년간이나 닫혀있는 입은 열리지 않았다.

1년 내내 노력을 한 결과 처음으로 “네”하는 한마디를 얻어 들었을 뿐이었다.
1학년 수업 시간에 친구들의 웃음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아이는 지금은 이미 40대가 되었을 텐데 어찌 사는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