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발 오늘 숙제 존나게 많아’ ‘병신, 지랄하네’

10대들이 습관적으로 늘상 쓰다 보니 어느덧 또래들 사이에  일상어로 버젓이 자리 잡게 된 말이다.

 ‘시발ㅋ→ 웃김 / 오 시발→ 놀라움 / 아 시발→ 아쉬움 / 시발...→ 슬픔 / 시발!→ 분노 / 시발;→ 어이없음 / 시발 ㅜ.ㅜ→ 격한 슬픔 / 시발;;→ 당황스러움 / 시바ㄹ→ 급함’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욕설 ‘시발’을 가지고 패러디해 최근 화제가 된 인기 트윗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요즘 교실 안은 온통 욕 투성이입니다. 아이들은 욕이나 비속어 쓰는 걸 그들만의 개성 표현이라고 생각하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인 욕설로 표현합니다.”

서울 구룡중학교의 김학경 교사가 전하는 학교 안 풍경이다. “왜 욕을 하냐고 질문을 던지면 멋있어 보이거나 재미있어서. 아니면 친구들끼리 친근감의 표시라고 대답해요. 10대들의 ‘또래 문화 코드’인 셈이죠.” 도덕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김 교사는 ‘욕의 정체’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기로 작정했다.
 

탁월한 한문 실력을 바탕으로 욕설의 유래를 꼼꼼히 찾아내 욕 강의에 나선 김학경 구룡중학교 도덕 교사

  
교사 생활 20여 년째인 그는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유적답사와 창의체험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제자들이 교과서 속 ‘박제된 지식’이 아닌 오감을 통해 생생하게 배운 정보를 ‘삶의 지혜’로 차곡차곡 쌓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 대상으로도 다양한 교양 강좌를 꾸준히 진행해온 그는 10년 넘게 교육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주인공이다.

동양학을 전공한 김 교사는 국사편찬위에서 내는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 교열을 담당하고 ‘유교사전’, ‘유언’ 등의 책을 낼 만큼 탄탄한 한문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욕 강의를 선보이기 위해 그는 이 실력을 십분 발휘했다. 

우선, 옛 문헌을 샅샅이 뒤져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이 지은 시 등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욕’의 흔적을 꼼꼼히 찾아냈다. 그 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욕과 서로 비교해 보며 강의 자료를 만들었다. 바른 언어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판에 박힌 설교식 수업 대신 역발상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형식의 도덕 수업이었다.

이런 그의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학생들이 욕 강의를 무척 재미있어 했어요. 정확한 어원과 속뜻을 모르고 썼던 욕들을 하나씩 놓고 의미를 짚어주니까 놀라는 눈치였어요. 무심코 욕설을 내뱉기 전에 한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죠.”
 

십대들의 언어습관에 관심 많은 학부모들도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욕특강에 참여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청소년 1천5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매일 습관적으로 욕설을 사용하는 청소년이 절반(52.5%)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욕을 처음 사용하는 시기도 초등학교 때라는 답변이 73%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교사는 가치 판단의 잣대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걸 스펀지처럼 흡수해 버리는 초등학생들에게 욕 강의가 꼭 필요하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여성문화기획자들의 모임인 ‘문화와 성장하는 사람들 W’에서 재능기부 형태로 함께 초등학생 강연회를 마련해 보자는 제안이 들어오자 그는 흔쾌히 동참했다.

이렇게 해서 ‘욕 너는 누구냐’라는 다소 도발적인 타이틀의 특강이 송파에 있는 마천청소년수련관에서 지난 2월 22일 첫 선을 보였다. 이 자리에는 초등학생 뿐 아니라 평소 자녀들의 언어 습관에 관심이 많았던 학부모들도 함께 참석해 열띤 관심을 보였다.

‘어린 수강생’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된 이날 특강에는 평상시 많이 쓰는 욕 적어보기, 욕 실습 같은 ‘재미’적 요소가 덧붙여졌다. 강의에 앞서 학생들은 평상시 많이 쓰는 욕설을 가감 없이 포스트잇에 적어 보았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시발, 개새끼, 병신, 존나’ 등이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했다.

계속해서 영화 ‘써니’ 중에서 7명의 여고생들이 온갖 종류의 욕설로 경쟁 그룹과 ‘맞짱’ 뜨는 ‘욕 배틀’ 영상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박장대소하며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초등학생들이 친구들 사이에 자주 쓰는 욕설들을 꼼꼼하게 직접 적어냈다.

 
“선생님, 엄마, 친구가 함께 있는 공개적인 공간에서 평상시 무심코 썼던 욕을 한번 되짚어 보고 영화 속 욕설을 제3자의 시점에서 들어보니 어떤 느낌이 드는지 ‘체험의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이번 특강을 기획한 ‘문화와 성장하는 사람들 W’ 노상미 강사의 설명이다.

본격적인 욕 강의에 나선 김학경 교사. 성(性), Sex와 깊은 연관이 있는 우리나라 욕설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왜 욕 중에는 소새끼, 말새끼는 없고 ‘개새끼’만 쓸까요?” 질문들 받은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원시시대 이래로 인간은 근친상간을 엄격하게 금했고 가축 역시 ‘짝짓기’의 분명한 기준이 있는데 반해 유독 개만 예외적인 동물이었기에 도덕 관념이 없는 상스럽다는 의미에서 ‘개새끼’라는 욕이 등장했다며 김 교사는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흔히 사용하는 ‘시발, 존나게’는 각각 여자의 성기 ‘씹’과 남자의 성기 ‘좆’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우리나라 욕설 가운데는 성기를 비하하거나 근친상간을 의미하는 말이 많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와 함께 사무라이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말 보다 칼’이 앞섰기 때문에 욕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는 역사적 맥락까지 짚어주었다.

“염병, 화냥년이 뭐예요?”, “썅, 우라질, 또라이는 무슨 뜻이에요?”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들은 서로 손을 들어가며 욕의 유래와 의미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욕 강의에 병자호란 등의 역사 스토리와 성교육까지 결합되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욕의 유래에 대한 상세한 강의를 들은 뒤 ‘욕 실습’에 나서자 쑥스러워하는 학생들

 
마지막으로 진행된 욕 실습 시간. 어린이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알고 있는 욕을 서로 공개적으로 해보도록 했다. 욕의 속뜻을 배우고 난 뒤라 대다수 아이들은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평소 아이들 사이에 ‘욕 대장’으로 불렸던 6학년 남학생도 쑥스러워하며 머리만 긁적였다.

“열 받거나 화 나서 혹은 내가 기 싸움에서 이기고 싶을 때 욕을 하죠. 욕이 나쁘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 뱉고 나면 속이 후련할 때가 있지요. 선생님은 시금치를 끔찍이도 싫어해요. 그래서 화날 때마다 ‘시금치 같은 자식아’라는 나만의 욕을 만들었어요. 여러분도 재미있는 비밀 욕을 만들어 보세요.” 욕 실습을 노련하게 이끈 윤영애 강사의 재치 있는 마무리 멘트에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 즐거워했다.

“재미있었어요. 별 뜻 없이 썼던 욕이 남자와 여자의 성기와 관련된 말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영어 ‘mother buck you’와 같은 의미라는 사실도 의외였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욕의 뜻을 이야기 해줄 생각이에요.” 5학년 전수안 군이 의젓하게 말했다.

아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던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욕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덩치 큰 아이들한테 가끔씩 얻어맞고 속상해 하기에 너도 세게 말하며 기선 제압하라고 부추겼어요.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욕이 늘더라구요. 강의를 들으며 엄마인 나부터 반성했어요.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많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욕 강의는 참신했어요.” 라며 만족감을 나타낸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욕 강의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핵심 키워드입니다. 청소년기에 입시에만 올인하다 보니 가정에서는 욕설을 쓰는 자녀를 보고도 성적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며 엄하게 혼내지 않는 부모들이 많아요. 잊고 지냈던 ‘예의’를 한번쯤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와 성장하는 사람들 W’와 김학경 교사는 청소년 욕 특강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정책기자 오미정(프리랜서) jouro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