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숭곡중학교(교장 정정혜)는 지난해 3월 개교한 새내기 혁신학교이다. 신설학교인 탓에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그 중에서 수업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점을 뒀다. 숭곡중학교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도 곧장 집이나 학원으로 향하지 않는다. 교실마다, 혹은 특별실에서 학생들이 남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가끔씩 걱정하는 학부모님들의 전화가 올 정도이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축구나 야구를 하는 남학생들도 있고, 숙제나 수행평가 과제를 함께 하기도 한다. 어떤 학생들은 놀랍게도 교무실에서 교사들과 논다(?).

숭곡중의 거의 모든 동아리활동은 문예체 활동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밴드반, 도서반, 사물놀이반 등 학교동아리뿐만 아니라 학년 초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상설 동아리(역사탐구반, 코스프레반, 야구반, 학습반 등)가 10여개에 이른다. 한 학년, 전교생이 240명밖에 안 되는데도 방과후 상설 동아리 활동에 참가하는 학생은 180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동아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여학생들이 스스로 모여 공부하겠다고 만들어진 학습반 동아리도 있고, 교사가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수업하는 방과후 학습 동아리도 여럿이다. 학부모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수학반도 있다. 그리고 방학을 이용해 1박2일의 ‘ 자신감 향상 캠프’ 를 진행한다. 여름에는 강원도 바우길 16km를 걸었고, 겨울에는 운악산을 등산할 예정이다.




1학년이라 아직 어린데도 학생회 활동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3월에 학급회, 학생회장 선거로 학생회를 구성하고 부서 체계까지 갖추었다. 5월 6일 성대하게 진행된 개교식의 사회자는 바로 학생회장과 부회장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차분하고 씩씩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 왔다. 2학기 간부수련회는 학생회가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했다. 집단놀이부터 모둠 토의 발표, 그리고 뒷정리까지 교사들은 옆에서 지원하는 역할만 맡았을 뿐이다.

지난해 10월 28일 제1회 축제 ‘재잘제잘’ 은 축제 이름 공모부터 홍보물 제작, 진행, 운영을 학생들과 기획단이 주도해 성황리에 개최됐다. 축제에는 교사와 학부모도 함께했다. 그런 어른들의 표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큰일을 잘해냈다는 데 대한 대견함이 묻어났다. 전시놀이, 참여공연 마당까지 모든 행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자리에서 축제기획단 학생들은 두 달 이상 준비해온 것이 만족스럽게 끝난 데 감격해 엉엉 울기도 했다.

지난 12월에는 학년말 통합 수업의 하나로 영어팝송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나올까 했던 걱정과 달리 10팀 100명이 참가해 열심히 연습한 팝송 실력을 뽐냈다. 반 전체가 일주일간 「Jingle Bell Rock」을 노래에 율동까지 연습한 반이 1등을 차지했다. 다른 팀들도 거의 개인이 아닌 단체로 불렀다는 점에서 학생들 사이에 배움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결국 학생들 스스로 ‘주제-탐구-표현’ 의 과정을 협력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수업 혁신과 배움의 공동체 구축은 숭곡중의 최우선 중점 추진과제였다. 교사들은 “수업이 행복하지 않아 수업을 바꾸고 싶다.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수업하고 싶다. 수업연구회를 통해 서로의 수업을 배우고 싶다” 고 종종 말해 왔다. 바로 그것이 혁신학교를 지원한 동기 중 큰 부분을 차지한 셈이다. 그래서 신설학교로 경황이 없던 3월부터 바로 교실을 ㄷ자 배치로 바꾸고 배움의 공동체 수업 모형과 수업공개 및 연구회를 시작했다.

3월 15일 첫 수업연구회를 할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1학년 밖에 없어 모든 교사가 한 교실에 들어가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모둠별 관찰을 하고 함께했던 진지한 수업연구회 모습은 일반학교에서 상상도 못할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류현진 선생님은 “14명의 교사들 한 명도 예외 없이 1년 동안 활동지를 만들고, 모둠수업으로 바꾸고, 늦게까지 남아 수업연구회를 하면서 노력했다” 며 “그 결과 지금은 우리 학생들이 서로 돕고 함께 배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 다”고 말했다. 수업활동뿐만 아니라 과목별로 수행 평가를 할 때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협동한다. 시험 전날까지도 교실에 삼삼오오 모여 다음날 볼 과목을 함께 공부하는 장면은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었다.


그동안 수업연구회를 참관한 많은 학부모와 다른 학교 교사들은 “선생님들이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파악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몰랐다. 정말 감동적이고 선생님들의 열정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교사들이 서로의 수업에서 배우고, 수업을 하지 않는 다른 반 학생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제 숭곡중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들’ 이 되었다. 작년 말 설문조사 중 ‘2011학년도에 숭곡중이 제일 잘한 것’ 을 묻는 질문에 거의 모든 교사가 바로 ‘배움의 공동체 수업과 수업연구회’ 를 꼽은 것은 그만큼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반증이다.

특히 영어와 수학과목에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지 않는 대신 영어회화 전문강사와 학습부진강사가 교과 교사와 함께 교실에 들어 가서 팀티칭을 했다. 교사가 수업을 전반적으로 이끌어나가되 보조 교사는 설명이나 모둠학습을 할 때 이해가 늦은 학생들을 중점적으로 도와줬다. 학급에 따라서 보조교사가 희망하는 학생을 데리고 다른 교실에서 그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하다가 다시 본 수업으로 돌아 오는 경우도 있었다.


혁신학교는 교사, 학생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이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이다. 3월 학부모 총회에서 혁신학교를 설명하며 학부모들의 참여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6월의 학부모 아카데미에서도 그와 관련된 주제로 3강의 강연을 마련했다. 한 학기에 한번씩 1교시부터 7교시 수업연구회까지 자유롭게 수업을 참관하도록 수업공개의 날도 운영했다.

11월에는 학부모와 전체 교사가 모여 간담회를 가졌다. 그날 참가한 40여명의 학부모들과 진솔한 얘기를 나누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무척 즐거워하지만 수업 분위기나 생활교육에서 걱정스러운 점들을 지적했다. 교사들은 학생들 생활과 관련하여 학부모들에게 “아침을 먹여서 보내 달라. 잠을 충분히 재워 달라”는 부탁을 했다. 더불어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들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앞으로 부족한 점들을 함께 채워나가자고 제안했다. 새해에는 학년별 학부모-교사 간담회를 학기별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지역교육시민운동단체의 학부모 강좌가 한 달에 한번 숭곡중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다. 학교축제와 학생회 활동에 청소년문화단체 ‘품’ 선생님들의 도움을 얻는 등 지역의 협조와 더불어 서로 소통하는 기회를 점차 늘리고 있다. “내년에도 같은 반으로 올라가게 해주세요. 담임 또 해 주세요.” 이는 학년말에 학생 설문지 건의 사항에 나온 내용이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만큼 학교생활이 즐겁고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이런 데 대한 선생님들의 마음은 기쁘고 뿌듯 했다. 2011년에 뿌린 학교혁신의 씨앗이 2012년에는 본격적으로 움터 자라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모두가 더불어 배우고 나누며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뒤따르는 숭곡중학교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