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듀] 예술은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결집된 형태의 협동사회(Genossenschaft)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통해 모든 존재와의 소통을 주장한 요셉 보이스가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했듯이 예술가나 관객이나 어찌 보면 이 협동사회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고, 향유하고, 소통하고, 공유하기 위해 자발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문화예술은 원래 독자적인 경제성을 갖는 게 어려워 언제나 외부 지원에 의존하여 활동이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고대 유럽의 절대군주 시대에서는 소수 귀족들만이 즐길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당시 귀족들의 후원 없이는 예술의 창작이 쉽지 않았다. 음악의 대가 베토벤도 당대 프란츠 요셉 왕자의 재정지원뿐만 아니라 좋은 악기의 증정을 통해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는 비단 베토벤뿐만이 아니다. 세기의 음악가나 미술가들도 당시 그들의 막강한 후원자(patron)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경제적 후원자들의 취향이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자연히 그들의 간섭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러다 18세기 말엽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으로 경제 분배가 이루어지고 국민국가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는 예술의 활동도 보편화 되었다.

20세기가 되면서 선진국들은 문화예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정책차원에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예술시장의 확대를 모색하게 되었다. 적극적인 예술의 지원(arts funding)에 대한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예술의 부흥기를 맞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이 공공재원의 지원 없이 자생력을 갖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항상 지원의 주체가 되는 국가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이런 점 때문에 개인 아티스트나 예술단체들이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지원해 주는 기구는 별도로 운영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조성되었다.

그래서 문화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국가의 문화예술재원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하는 전문기구를 설치했다. 이런 기구들의 설립정신은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기본이 된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공공재원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전문문화예술기구들이 탄생했다. 선진국들이 문화예술기금의 독자적인 관리운영을 주창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가 예술적·창의적 표현의 바탕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구들은 독자적으로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수립하고 배분을 하는데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또 한편으로 지원금을 신청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물론, 외부의 어떤 이익집단의 압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기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1950년대 캐나다의 독립예술기구 창립을 의회에 발의했던 당시 루이스 로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국가의 문화예술 발전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예술 활동을 제한하거나 그들의 자유를 훼손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공공재원을 지원받는 예술기관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하며 예술의 창의적 재량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기본 철학이 문화예술 정책에서 원칙이 되어야한다. 문화예술의 선진성은 바로 이러한 팔길이 원칙이 얼마나 존중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글 : 이인권
긍정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사)한국언론사협회 문화예술위원장 
前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