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졸속 강행을 반대한다!

[nEn 뉴스에듀신문] 고교학점제는 여러 교육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교육관계자들이 도입을 요구하였고 이후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여 정부안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진보교육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곧 시행될 한국형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사들의 찬성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편교육과 거리가 멀고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교육부가 2025년부터 전격 실시하려고 하는 고교학점제는 첫째, 고교학점제와 전면 교과선택제를 묶어서 시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전면 교과선택제를 실시하는 싱가포르처럼 초등학교부터 입시 교육이 진행되고 소수의 영재그룹을 선발하여 교육기회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엘리트 교육이 중시되어 교육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에도 필수교과목의 비중이 57% 수준으로, 교육부가 시행하려는 한국형 고교학점제-전면 교과선택제가 도입되면 그 비율이 3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더라도 필수교과의 수준을 핀란드처럼 2/3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고교학점제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고강도의 교육의 질을 보증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교과선택제와 연결된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려면 이수/미이수 제도 운영을 고려해야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수/미이수 제도를 운영하면 재수강제도를 두어야 하는데 이 경우 현행 학년제 유지가 어렵게 되기 때문에 미수/미이수 제도의 실제적 적용에 대해 주저하고 있다. 학년제는 그대로 두고 미이수과목에 대해서는 ‘보충이수’(별도 과제 수행이나 보충과정 제공 등 본 과목의 내용이나 수업량을 축소하여 수강하는 방식)나 ‘대체이수’의 방법으로 교육의 부실을 방조하려고 하고 있다. 

셋째 진로 결정과 직업 선택을 중심으로 초·중등교육을 개혁한다는 정책 의도는 시대착오적이다. 만 16살에 진로를 결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교과목을 정해 수업을 집중적으로 이수토록 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나아가 자본과 정부가 고용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를 학교 내부로 전가하는 것이자, 입시 뿐 아니라 취업의 스트레스까지 고교생들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기술과 직업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여러 기술이나 직업에 두루 활용될 수 있는 기초 지식이나 범용적인 역량을 중시하며 교육해야 한다는 UN, UNESCO, OECD의 최신 교육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다. 교육선진국으로 거론되는 여러나라에서는 전면적 교과선택이 아니라 ‘보편교육 강화’를 고교교육의 기본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OECD 교육 2030’의 취지에 부응하여 ‘새로운 시대 보편교육의 질적 강화를 위한 새로운 고교교육과정’을 2021년 8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 핵심은 필수과목의 비중을 줄이지 않고 ‘포괄적 생애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교과 선택 확대가 아니라 교과별 핵심개념 학습과 통합주제 학습의 효과적·실제적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을 학교에서 배워 주체적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는 몇 가지 문제점을 더 안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개설되는 수준의 교과목들을 양산하는 무분별한 과목 개설이 향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직 기반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추진되는 학교연합형·지역연계형 교육과정 시행은 결국 ‘인강’과 같은 ‘원격수업’의 대폭 확대를 불러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의 교사들은 다과목 운영에 허덕이거나 고교학점제 운영 관련 각종 행정에 역량을 소진하게 될 수 있다. 대학에서 수십 년 간 목도했듯, 정규교원 채용대신 고용과 신분이 불안정한 시간강사를 고교에서 양산하거나 단기연수를 거친 산업체 인력을 강사로 대폭 활용하는 것은 채용된 당사자들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잠재적 교사인력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은 현재 추진 중인 한국형 고교학점제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다. 만일 고교학점제가 장점이 있어 도입을 추진한다면, 그 장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미비한 지점을 제대로 채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먼저 시행한 뒤 나중에 고쳐 쓰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교육을 올바로 개혁하자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정부 기구에 들어가 땀방울 흘리는 이들의 노력 전체를 폄훼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설계도가 잘못되었다면, 애초 설정한 긍정적 목표를 달성하기보다 폐해를 오히려 키운다면 우리는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는 한국형 고교학점제 시행을 강행하지 말고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더 듣기 바란다. 제대로 설계하여 문제점을 바로 잡은 뒤에 제도의 시행여부를 결정하기 바란다.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2021년 7월 22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2.0),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