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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선장, 외항선 올라7번 북한방문문장가 이며, 2020년 대한민국 교육대상(인성교육 부문) 수상자
정정환 기자  |  hwanheej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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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28  17: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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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MM 외항선 항로 그림
[nEn 뉴스에듀신문] 정정환 기자 = 외항선(外航船) 상선(商船)을 타고 오대양을 향해서 세계 곳곳의 항구를 누벼왔던 외항선 항해사 김종수(선장)은 선원의 업무 중에 필요한 화물을 운반해온 오랜 경력을 보유한 베테랑[vétéran] 선장출신이다. 아울러 문장가(文章家)로 알려져, 2020년 대한민국교육대상<인성교육 대상>까지 받았기에 본보를 비롯하여 타언론매체에도 게재됐으며, 주변인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칭송까지 받아왔다.

지난 김대중 전 대통령(DJ) 정부시절(1997-2002년) 당시 햇빛정책을 지향하면서 남북한 우호협력 증진과 통일 한국을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 동포의 사정을 이해하고 도움의 손길로 밀가루와 비료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 당시 밀가루를 군산항에서 싣고 북한의 남포항(평양 외항)에 두 번 여수에서는 복합 비료를 싣고, 서해의 해주에 3번, 동해의 원산과 청진에 한 번씩 총 7번 북한을 왕래했다.

수송할 때는 매번 적십자요원 세분과 함께 승선했다. 배 머리인 선수(船首)와 배 후면의 선미(船尾)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동서해의 NLL(cross the 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을 넘을 때 까지는 자유로, 북한의 해상에서는 북한의 요구대로 항로를 따라 항구 입구까지 갔다, 내항에서는 항로를 안내하는 도선사(PILOT)가 항해하여 안전하게 부두에 접안(接眼)했다.

그 뒤 접안 시에는 검역, 출입국 세관의 검사를 엄격하게 마치고 밀가루와 비료를 2-3일 간 부두에 하역했다. 하역하는 동안 적십자 요원은 외출하여 호텔에서 숙식하고 선원은 상륙할 수 없으니 부두에서 기다리며 선원 휴게소(SEAMAN CLUB)에서 미화(DALER)로 면세품을 몇 가지 안 되며 조잡했다. 다만 선물용 뱀술이나 들쭉술(들쭉술은 백두산500-1,000미터 위치에 서식한다는 북한의 천연(기념물) 정도를 구입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술도 가방에 뉘어 넣어 뒀더니 병뚜껑이 헐거웠던지 술이 흘렀다. 아마도 병마개가 완전 밀봉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무상으로 밀가루와 비료를 전해주었더니 고맙다는 뜻으로 적십자 요원과 전 선원에게 한 끼의 식사를 대접해 줬고, 답례 차원에서 우리 측에서도 식사를 접대했기에 북한 고급식사를 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모든 식 재료가 비료를 쓰지 않고 속성 재배하지 않았던 탓인지 정말로 맛있는 식사였다. 지금도 생각 하면 그때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회상 된다. 일반 적으로 선원은 세계 어느 항구에 입항해도 상륙하여 외출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으니 부두에 대가하다가 하역이 끝나면 출항한다.

부두에서 본 시내는 버스가 몇 대만 보였고 당시는 자전거가 유일한 교통수단 인 것 같았다. 자전거도 대부분 일본산 중고자전거 이었고 여유가 있어야 소유할 수 있는 교통수단 인 것 같았다. (일본에 입항하는 북한 선박이 일제 중고자전거를 수입해 운반수단으로 사용한다) 산은 멀리서 보아도 산길이 뚜렷하게 보이며 산에는 겨울 난방용 땔 감 나무로 대부분 잘라나가 민둥산이 대부분 이었다.

본선이 싣고 간 5천 여 톤의 화물(비료, 밀가루)는 창고대신 화물 기차로 바로 싣고 나머지는 부두에 야적해 둔다. 기차로 싣고 가는 화물은 먼 곳으로 가야 하니, 우천에 대비해야 한다. 비가 오면 비닐이나 캔버스로 화물을 덮어야 시군에 배달하는데 여러 시간이 걸려 배달한다고 한다.

인부들은 영양이 부족하여 혈색이 좋지 않은 편이며 키가 큰 사람이 많지 않게 보였고 노동하는 작업자들의 작업복도 남루해 보였다. 어느 항구에서는 정부가 새 옷을 지급해 깨끗한 옷을 입은 항구도 있었다. 입출항시 항구에서는 간혹 공장이 보이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없으니 공장이 낡았거나 유류 보급이나 전기 사정으로 공장이 가동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예상된다.

본인이 갔을 때만 해도 농촌에서는 주로 옥수수 농사였고 남한에 지난 60년대처럼 비료가 부족해 농산물이 잘 자라지 못한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바다에서는 어선이 극소수여서 조업하는 배가 적은 편이었으며 심지어는 여래개의 고무보트를 띄워 한 명의 선원이 낚시로 고기를 잡다가 파도가 조금만 쳐도 소리를 크게 치면 위험하니 어선이 와서 선원을 싣고 가는 열악한 어업을 하고 있었다.

외화벌이로 서해는 오래 전부터 동해에는 몇 년 전부터 중국에 임대했고 , NLL 근처나 한강 입구까지 중국어선이 조업하여 남한의 어선이 어업을 망치고 있기도 하였다. 특히 어떤 항구에는 중국의 생선 운반선이 항구 내에 기다리고 있다가 만선이 되면 중국으로 수출하여 외화벌이를 하가도 했다. 남포항에서는 도선사가(PILOT)가 전한 북한 사정을 들어보면 동. 서해안의 유류 매장량을 조사했는데 정확한 내용 량은 알려주지 않았다. 남포 외항에서는 석유시추선이 있었는데 호주기술자가 설치했다.

종종 선박에 체류하는 세관원과 대화기회가 있었는데 북한에서도 당시 소떼를 지원한 정주영 회장이 장남 얘기를 하면서 정회장이 북측 강원도 통천 태생이고, 그의 작은 아버지가 소 한 마리를 팔아 주어서 서울에 가서 성공했다면서 북측인사인 것처럼 얘기하는 이도 있었다, 1999년 중국의 옌타이 항에 입항하여 선장과 함께 한국 교포식당에 갔을 때 청진에서 탈북 한 20세 처녀를 만났다. 90년대 후반 고난의 시대에 의식주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니 목숨을 걸고라도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탈북을 한다고 했다.

중국으로 탈북 했던 여자 중에 중국의 농촌에서 장가 못간 총각에게 팔려가서 어렵게 생활을 한다고 한다, 본선 선장님은 한번은 6.25때 남한에 내려온 분으로서 대동강 인근에 살았는데 남한으로 내려와 온갖 고생을 하다가 해군에 입대했고 재대 후 상선 군무를 하다가 선장이 된 분이라고 했는데 억양이 북한 말씨이었다.

그는 교포 식당 처녀와 고향얘기를 나누면서 팁을 몇 차례 주기도 했다고 한다. 친해지니 그녀는 탈북 당시 상황을 고향의 부모님과 오빠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가족이 자기의 생사를 알 수 없다면서 무언가 전하고 싶어 머뭇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출항 전날 밤에는 이야기를 못하고 노래를 한다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글프게 부른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처녀가 하고 싶은 얘기를 유추해 보니 “혹시라도 선장님이 청진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나의 중국 생활과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를 써 줄 테니 부모님께 전해 달라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2007년경 노후 선박이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 선주에게 팔려서 북한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과 얘기해 보니 그 선원들도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본인이 원양상선을 승선해 7번이나 북한에 다니면서 느낀 바로는 지도자를 잘 못 만나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북한 형제자매들에게 우리 남한은 정말 잘 살면서 도와주지 못하고 수많은 동포가 의식주 해결조차 못하고 배가 고파 죽어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동. 서독이 서로 많은 도움을 주어 통일을 이룬 것처럼 우리도 남북한 상호 교류협력을 통해서 통일이 하루속히 이뤄진다면 남한의 기술과 자본에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이 상승효과를 누릴 수만 있어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5대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유명한 학자들의 예언과 주장들도 많았다.

세계적으로 분단된 우리조국이 지금은 남북이 화해와 교류를 통해서 남. 북한이 전쟁 없는 국가로 하나 되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자주국가로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서 원양 상선을 타고 7회에 걸쳐 북한방문 소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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