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니스트

[뉴스에듀] “오늘은 2014학년도 대학수능 시험일입니다. 수험생 여러분들 모두에게 좋은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 출근길 지하철에서 모처럼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안내방송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집안에 대입 수험생이 없기 때문에 막상 수능 시험일이 다가왔어도 그다지 관심을 기울일 일이 아니었건만 이러한 안내방송 몇 마디만으로도 잔잔한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안내방송 서비스라고 해서 내용이 그렇게 유별났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의 코멘트에 “OO고교와 OO고교, OO여교에서 시험을 보는 수험생은 이번 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라는 정도의 안내가 덧붙여졌을 뿐이지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자 승무원의 음성은 기존의 녹음 안내방송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년 내내 시험점수와 씨름하며 곤욕을 감수해 온 전국 65만여 명의 수험생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기대이며 격려의 목소리였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집은 없으며, 따라서 언젠가는 대학입시라는 홍역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관공서와 기업체의 출근시간이 1시간 늦춰졌고 전철과 시내버스가 수험생들의 입실 시간대에 맞추어 집중 운행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었겠지요.

지하철 당국이 안내방송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해마다 겪어야 하는 입시 몸살에 대해 수험생들에게 나름대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오던 중 구파발에 이르러서야 첫 안내방송이 나온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아마 수험생들이 밀리는 입실 시간대에 맞춰 방송을 내보내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수능시험 날짜에 대해 둔감했던 자신을 책망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안의 아이들이 이미 홍역을 치렀다고 해서 대학입시에 대한 모든 관심을 물리쳤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겠다고 생각해 왔으나 어제의 지하철 안내방송은 그동안의 생각이 틀렸다는 점을 여실히 깨우쳐 주었습니다.

전철에 타고 있던 수험생 본인들이 받아들였을 느낌의 정도는 더욱 직접적이었겠지요. 고사장으로 향하면서 며칠 전부터 떨쳐버리지 못하던 불안감과 조바심도 어느 정도는 덜어졌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물론 이로 인해 각자가 반드시 시험을 잘 보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사회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 속으로는 상당한 위안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해마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가슴을 졸이기 마련입니다. 고교 3학년 학생이나 재수생이 있는 집이라면 식구들 모두가 비슷한 사정일 것입니다. 평소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걱정스레 눈여겨보면서도 행여나 그런 관심으로 인해 본인이 지나친 부담을 느끼지나 않을까 일부러 태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본인이나 식구들의 조바심이 덜어지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다행히 수능 때마다 한파로 공연히 심술을 부리던 날씨도 올해는 포근하게 지나갔습니다. 수험생 교통사고를 포함해 몇 가지 사건 사고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년에 비해서는 비교적 무난히 수능전쟁이 끝났습니다. 일단 사회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수능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대입 경쟁은 지금부터가 진짜입니다. 각자마다 자신의 예상 성적에 따라 대학의 영역별 가중치 모집요강을 살펴보고 꼼꼼히 정시모집 지원 전략을 짜야 합니다. 안전지원을 하느냐, 아니면 소신지원을 하느냐 하는 판단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수험생 본인이나 학부모들이 다시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더구나 중요한 사실은 수험생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허탈하기도 하고, 낭패감을 맛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 사회가 수험생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뚜렷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 지하철의 안내방송은 그러한 하나의 사례일 뿐입니다. 그 안내방송의 내용을 다시금 반복하고자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참고서와 문제집에 파묻혀 마음고생을 앓아 온 수험생과 그 식구들 모두에게 차선책으로나마 좋은 결과가 맺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필자소개,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저서로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한국과 대만, 잠시 멀어진 이웃’(e-book)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