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듀] 허위 자백과 오판(리처드 A 레오 지음, 조용환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미란다원칙’은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 연행하면서 묵비권 행사나 변호인 선임권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책은 그 미란다원칙 이후의 가려진 실상에 천착해 흥미롭다. 경찰의 허위 자백 유도·강요와 그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낳는 피의자 신문과 형사법 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고발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있다. 경찰의 피의자신문 관행과 허위자백 및 오판에 대한 경험적 연구의 선구자로서 이 책으로 형사법학회가 수여하는 우수도서상(2009), 법사회학회가 수여하는 허버트 제이컵 도서상(2009), 사회문제연구학회 법사회학 분과의 에드윈 H. 서덜랜드 우수학술상(2010)을 받았다.​

이 책은 미국 경찰의 피의자신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허위자백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천착한다. 저자는 경찰의 피의자신문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① 3급 수사의 시대는 경찰이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물리적 강압과 심리적 강박을 사용하던 시기로 고무호스와 곤봉이 그 시기를 상징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31년 위커샴 보고서, 1936년 브라운 대 미시시피 판결 등이 나왔다. ② 심리적 피의자신문 시대는 거짓말탐지기와 피의자신문 훈련 지침서가 상징하는 시대로 1966년 미란다 대 애리조나 판결이 대표한다. ③ 무죄의 시대는 1990년대에 DNA 분석을 통해 허위자백으로 오판한 것이 밝혀졌다.​

저자는 허위자백과 오판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한 개선책으로 피의자신문의 전체 과정을 의무적으로 전자 녹화할 것을 제안한다. 피의자신문 전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전자녹화를 의무화함으로써 경찰과 검찰, 형사피고인들은 모두 혜택을 입을 수 있다. 한국에서 경찰과 검찰이 가진 더욱 광범위한 권한을 고려할 때 피의자신문에 관한 완전한 기록을 만드는 것은 절차적으로는 물론 실체적으로도 특별히 중요하다.​ 

얼마 전 검찰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권유하여 수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민변 소속 변호사를 대한변협에 징계개시 신청하였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미란다 판결은 “피의자신문 전이든 신문 도중이든 피의자가 어떤 식으로든 묵비하려는 의사를 표시할 경우 신문을 중지해야 한다, …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겠다고 말할 경우 변호인이 참여할 때까지 신문을 중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선언했다. 이에 따르면 변호인의 진술거부권 권유는 지극히 정당한 변호인의 조력에 해당한다.​

역자는 말한다.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수사기관으로부터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하고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이자 민주사회에서 형사사법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초석이다.”

“형사사법제도가 정상적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도와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수준은 피의자의 방어권이 얼마나 보장되는가, 변호인이 얼마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재판 과정과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유하는 변호사에 대해 징계개시 신청을 하는 우리의 형사사법 현실은 도대체 어느 수준인가? 아직까지도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역자의 지적처럼 피의자의 방어권과 변호인의 역할에 관해 천박하고도 적대적인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피의자신문 전체 과정의 의무적인 전자 녹화는 피의자신문을 정상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다만 법정에서 피의자신문의 녹음테이프를 돌려보는 방식으로 재판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공판중심주의적 심리에 배치되므로, 그 증거능력 인정에 있어서는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탄핵증거로서만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88쪽 / 2만 9000원 / 후마니타스

역자 : 조용환
역자 조용환은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1988년부터 변호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허위로 자백한 피고인들을 변론하면서 허위 자백과 오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내법의 해석과 적용에 국제 인권 규범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역사의 희생자들과 법: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소멸시효의 적용 문제”(2010), “조약의 국내법 수용에 관한 비판적 검토”(2008), “국가인권기구의 국제적 발전과 한국의 대안”(2000)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