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경석 기자

[뉴스에듀신문=홍경석 교육전문기자] 오늘도 야근이다. 집을 나온 시간은 오후 2시. 근무는 오후 5시부터인데 3시간이나 일찍 나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먼저, 모 서점에 들러서 나의 저서가 비치돼 있는지를 점검하려는 의도였다. 

다음으론 대전광역시청 2층에서 열리고 있는 공예품 수상작 전시회를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시내버스에서 하차한 뒤 둔산동 소재 모 서점에 들어갔다.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나의 저서는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 가서 물었더니 00도매상과는 거래가 없는 까닭에 입고가 안 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씁쓸하긴 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책을 한 권 산 뒤 대전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토요일 오후답게 관람객은 내가 유일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가씨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아가씨는 물을 끓여 봉지커피를 타 주었다. “고마워요! 이담에 복 받으실 거유.” 나의 조크에 방긋 웃는 모습이 더 고왔다. 사진을 모두 찍은 뒤 그 아가씨 곁에 앉았다.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찌 되세요?” 스물두 살 대학생인데 알바를 나왔다고 했다. 냉큼 명함을 꺼내서 건넸다. “보다시피 이 책은 지난달에 내가 출간한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러니 꼭 사보세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대생을 뒤로 하고 출근했다.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소비할 욕심에 대전 사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떤 솔직한 아쉬움! - 내가 C사장 입장이었더라면 벌써 내 저서를 다량 구매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줬을 겁니다. “내 죽마고우가 쓴 책이니 읽고 도전과 용기까지 배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 같은 내용의 문자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의 어떤 일침이었다. 출간한 지가 한 달이 다 되었거늘 여태 관망만 하는 친구도 과연 친구던가... 그런 서운함은 다른 일부 동창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동창은 30권이나 구매한 반면,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는 동창은 아마도 ‘남 잘 되는 꼴은 못 본다’는 옹졸한 마인드를 지녔지 싶었다. 내가 비록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하고 역전에서 구두닦이 등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의리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똑 부러지게 지켰노라 자부한다. 

돈이야 없다가도 벌면 되지만 인간관계라는 건 그렇지 아니하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건 상식이다. 술 한 잔 덜 먹으면 내 책을 한 권 거뜬히 살 수 있다.(기껏해야 2만 원이다. 그것도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10% 할인이다.) 

해외여행을 안 가면 100권 이상도 무난하다. 모 언론사에서 영업부장으로 근무할 적의 실화다. 영업사원은 기본급이 전무하고 오로지 판매수당만 존재했다. 따라서 이직률이 대단히 높았다. 

당시 지사장은 그렇게 마치 철새처럼 떠나가는 사원들을 내다보지도 않았다.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한다’는 걸 신앙처럼 믿는 터였다. 하여 퇴직하는 직원(들)에게 밥과 술을 모두 내가 샀다! 

만취하여 비척비척 귀가하면 아내의 지청구가 장마처럼 쏟아졌다. “저렇게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고 들어오니 집에는 쌀독에 쥐가 빠져서 굶어죽는지도 모르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그러한 ‘퍼주기’는 계속되었다. 

덕분에(?) 현재도 궁핍하기는 매일반이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돈보다 우선인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끈끈한 의리니까.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회사 그만 뒀어.” 

“아차, 문자를 잘못 보냈구나. 좀 더 심사숙고할 것을... 그나저나 왜?” 공직을 퇴직한 뒤 근사한 직장에 사장으로 입사한 친구였거늘. “이젠 나이도 있고, 시간에 속박 받지 않는 자유직업을 갖고 싶어서...” 

이럴 땐 뭐? 칭찬이 우선이다. “잘 생각했네. 가게(개업했으면) 알려줘! 찾아가서 내가 점심 사겠네.” 우리 속담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게 있다. 이는 심보가 고약한 탓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옹졸한 마음가짐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돈이 땅을 샀다니 앞으론 거기서 소출(所出)되는 채소 따위를 얻어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좋다!’며 마음을 치환해보자. 그럼 마치 빈 집에 소가 들어온 듯 기분까지 청량해진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워하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뭣 하나 보잘 것조차 없는 놈이 처복(妻福)과 더불어 자식 복(子息福)까지 지녔으니 시기하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는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이 악마와 같은 세월을 잡초처럼 살아왔음을. 어쨌거나 이젠 그만 남 잘 되는 꼴도 좀 봐 주자. 이런 할아버지의 주장에 외손녀가 맞다며 빙그레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