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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기자의 서평] 한국인은 왜 영어로 말하기가 안 될까
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  casj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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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7  2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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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듀신문=홍경석 대전.세종.충청 취재본부장] 이완용(李完用) 이라고 하면 그에 대한 명칭이 금세 ‘매국노’로 치환된다. 이완용(1858~1926)은 을사조약(1905년) 때는 ‘을사5적’, 정미7조약(1907년) 때는 ‘정미7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다가 1910년 한일합방 후에는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친부·양부 모두에게 더없는 효자였으며 학식이 깊은 선비형 엘리트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명필로도 소문이 짜했던 그는 덕수궁의 경소전·숙목문·살량문, 창덕궁의 함원전 등 궁궐의 전각들은 물론 독립문 편액에 글씨를 남길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의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9살 때 먼 친척이자 대원군의 사돈인 이호준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그 뒤 고종의 눈에 들어 이호준이 출세 가도를 달린 덕분에 그 또한 팔자가 바뀌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관립학교로 설립된 ‘육영공원’에 입학해 영어를 배웠다. 덕분에 1888년 1월 미국 24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러 가는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를 수행했다.

몸이 아파 5개월 만에 귀국했는데도 고종은 이완용을 다시 중용해 주미 대리공사로 발령했다. 이완용은 1888년 12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889년 6월부터 1890년 9월까지 1년 3개월간 근무하면서 친미 개화파로 변모했다.

이완용은 1890년 10월 귀국 후 고종의 각별한 신임 속에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공조참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1894년 12월 외부협판(차관급)에 임명되었다. 1895년 5월 성립한 박정양·박영효 내각(제3차 갑오내각) 때는 학부대신(장관급)으로 승진했다.

그러던 중 1895년 10월 을미사변으로 친일 내각이 수립되자 정동파는 실각하고 이완용은 미국공사관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1896년 2월 11일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빼내오는 ‘아관파천’을 이범진과 함께 결행했다.

러시아공사관에서 단행된 개각에서 이완용은 외부대신 겸 학부대신, 이범진은 법부대신 겸 경무사(현재의 경찰청장)로 임명되었다. 1900년 7월에는 공금을 유용했다는 탐학 조사를 받아 관직 생활을 접었고 1901년부터는 양부의 3년상을 치르느라 중앙 정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은거 생활을 했다.

이런 이완용에게 또다시 변신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러일전쟁 후였다. 1905년 9월 하야시 곤노스케 주한 일본공사의 추천을 받아 학부대신으로 복귀해 본격적으로 친일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1906년 3월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고종 폐위를 주장해 온 이완용을 참정대신으로 발탁했다. 이완용은 이토 통감과 호흡을 맞춰 고종을 퇴위(1907.7.20)시키는 데 앞장섰다.

을사조약 때까지만 해도 백성들로부터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은 사람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박제순이었다. 그러나 고종의 양위를 계기로 매국노의 상징은 이완용으로 바뀌었다. 다소 장황하게 이완용을 거론한 것은 영어의 중요성을 거론하기 위함에서의 의도적 장치임을 밝힌다.

[영문법, 절대 무시하지 마라 - 한국인은 왜 영어로 말하기가 안 될까] (저자 김성태 & 출간 넥센미디어)를 읽으면서 이완용이 먼저 오버랩된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영어를 잘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합리적 믿음이 밑바탕 된 때문이다.

우리는 영어 공부를 최소 12년 동안 해왔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날 때면 왜 피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저자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혹은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을까? 바로 영문법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다. 즉, 영문법 공부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에 다시금 저자는 답한다.

- “자신들은 영문법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문제풀이식 공부를 벗어나서 참된 영문법 공부를 해봤냐고 반문을 하고 싶다. 또 한 번의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영문법 공부, 그것 너무 구식 아니냐고.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반문하고 싶다. 언어를 습득하고자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해답은 바로 문법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문법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다른 관점에서 영문법을 바라봐야 한다.” -

사족이겠지만 필자는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 했다. 영어라곤 알파벳조차 쓸 줄 몰랐다. 군복무 뒤 입사한 회사는 공교롭게 영어회화 교재와 테이프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맨땅에 헤딩하는 각오로 교재와 테이프 모두를 완벽하게 암기했다. 그러자 비로소 영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3월 12일 통계청과 공동으로 실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액은 2017년 18조7000억 원에 비해 4.4% 증가한 19조5000억 원이었으며 영어를 배우는 데 들어가는 돈은 5조7000억 원으로 수위(首位) 를 나타냈다.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를 추가하면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언어는 네 가지로 소통이 된다.

영어를 교육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4 skills’라고 한다. 듣기와 읽기, 말하기, 쓰기이다. 이 책은 영문법을 활용하여 이 네 영역을 고루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투자만 해놓고 정작 수확은 못 했던 ‘영어의 정복’을 다시 도모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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